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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철학이 우리 인생에 스며 드는 순간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저번에 읽었던 책들과는 다르게 이번 책은 내가 자유가 되어서 그런지 내 돈 내고 내가 원하는 책으로 골라 읽을 수 있었다. 남들에겐 사소할 수 있지만 1년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갇혀 지냈던 나에겐 이런 것도 행복으로 다가온다. 1년 6개월 하면 다들 군대라고 예측할 수 있다. 맞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군인 신분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군대에서 무엇을 젤 많이 했는지 몰라도 나는 군대에서 생각을 젤 많이 한 것 같다. 핸드폰과 티브이 컴퓨터가 통제된 곳에서 나의 미래와 나의 철학, 다른 모든 것들에 대한 생각을 하기에 딱 알맞은 환경이었기 때문이었다. 많은 생각을 했지만 그중에서 철학에 관한 생각을 가장 많이 한 것 같다. 운명, 만남, 죽음, 노력 등등.. 내 철학적인 생각들을 동기나 후임들에게도 전하고 말도 해보았지만 몇몇을 제외하고는 별 관심이 없었다. 이런 것 때문에 전역을 하게 되면 철학에 관련된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9월 한 달간 무슨 책을 읽을까 고민하는 와중에 14명의 철학자를 만날 수 있는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이 책이 딱 눈에 띄었다. 별 고민도 하지 않고 구매했던 것 같다. 물론 그 전에도 형성하고 있었지만 지난 1년 6개월 동안 꾸준히 길러왔던 나의 철학을 위대한 철학자였던 14명에게 물어볼 수도 있었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책은 총 3부로 나뉘어 있다. 새벽, 정오, 황혼 하루가 가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크게 보면 인생의 과정이기도 하다. 1부, 2부에는 새벽과 정오가 그렇게 잘 어울린다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지만 3부 황혼을 읽으니 정말 크게 와닿았다. 아직 내가 황혼의 나이가 아님에도 많이 와닿았다. 

 

1부 : 새벽


스스로에게 생각을 그만두고 행동에 나서라고 누차 촉구한다.

 

1부 새벽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로 시작한다. 침대에서 나오는 법이라는 큰 틀로 마르쿠스를 설명해 준다. 사실 읽으면서 깨달음을 얻었다기보다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라는 사람을 잘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위의 마르쿠스의 말은 너무 많은 생각이 들 때 한 번씩 상기시켜 볼만한 것 같다. 특히 아침에 침대에서 말이다. 그 다음은 철학의 거장 소크라테스가 나온다. 소크라테스에 대해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독서토론 논술과 고등학교 때 비문학, 대학 때 교양으로 들었던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수업에서 소크라테스를 많이 읽어왔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인생에 관해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의 인생은 철학의 거장이라는 수식어와는 거리가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자기 딴에는 궁금한 것도 많고 얘기도 해보고 싶어 이 사람 저 사람한테 가서 질문해보고 얘기해 보았겠지만, 깊이 생각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나 낯을 가리는 사람, 귀찮은 게 싫은 사람들에겐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었다. 실제로 나에게 소크라테스가 어떤 것을 물어보고 그거에 대해 계속 얘기를 했으면 나도 상당히 귀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그의 특성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누구보다 깊게 생각할 수 있었고, 많은 위대한 철학가들에게 자신의 철학을 전파하며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이다.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아갈 필요가 없다.
행복은 부산물이지, 절대 목표가 될 수 없다.
행복은 삶을 잘 살아나갈 때에 주어지는 뜻밖의 횡재 같은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말은 많고 많지만 나는 위의 말 2개가 젤 인상 깊었다. 행복에 관해서 군대에서 깊이 고찰할 때가 있었는데, 나에게 위 문장은 그 고찰에 대한 어느 정도의 답이 되었다. 소크라테스 다음으로는 루소와 소로가 나온다. 둘을 같이 언급하는 이유는 내가 느끼는 둘의 분위기와 철학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루소와 소로 둘 다 걷는 것을 좋아했고,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동시에 생각하는 것도 누구보다 좋아했다. 특히 소로는 세상과 거리를 두기 위해 윌든에 들어가 살았으며 고독을 즐겼다.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관찰하며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눈에 있는 게 아니다. 아름다움은 보는 이의 마음속에 있다.
당신이 보는 것이 곧 당신 자신이다.

 

참 와닿는 말이었다. 아름다운 것을 보려고 여행을 가기도 하고, 예쁜 사람에 끌리기도 하고 그렇다. 하지만, 소로는 아름다움을 찾아가기보다는 어떤 마인드로 물체를 바라보는 가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소로도 어떤 물체든 자세히 보고 마인드를 바꿔서 본다면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1부의 마지막으로 쇼펜하우어가 소개된다. 개인적으로 매사에 부정적인 사람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옆에 두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쇼펜하우어의 살아온 자세한 환경까지는 모르지만 이 철학자는 세상을 매우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렇다 보니 나에게 별로 와닿는 인물은 아니었다. 

 

2부 : 정오


2부에서는 주로 자기 성찰이 아닌 다른 이에게 베풀고 감사하는 법에 대해 말해준다. 이 챕터에서는 총 5명의 철학자가 나오는데 그중 두 명만 소개하겠다. 첫 번째로 나오는 철학자는 에피쿠로스이다. 에피쿠로스는 매사를 즐기라고 말하고 있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도 긍정의 힘이 가득 차 있다.

어떤 고통은 미래의 쾌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행복에 대해 너무 열심히 생각하면 행복은 사라진다.

 

위의 두문장만 봐도 에피쿠로스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듯이 고통이 와도 이겨내면 충분히 미래의 쾌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소크라테스와 마찬가지로 행복에 대해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라는 충고도 남겨준다. 나도 사실 지금까지는 에피쿠로스와 같은 마인드로 살아왔다. 좋은 일을 겪으려면 힘든 일 먼저 겪어야 한다. 그게 이치에 맞기도 하고, 그래야 그냥 일도 좋은 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간디다. 간디에 대해서는 평화를 사랑한 인물이라고 밖에는 모른다. 그의 삶과 철학까지는 깊게 관심이 없었다. 책에는 그의 삶과 철학을 자세하게 까지는 아니지만 가르쳐 주고 있다. 간디는 법정 변호사, 채식주의자, 사두, 실험가, 작가, 국가의 아버지, 명상가, 중재자, 잔소리꾼, 교사, 학생 등 많은 직업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중 가장 잘 어울리는 직업은 투사였다. 그는 인도를 지배했던 영국과 싸웠고, 싸우는 방식을 바꾸기 위한 싸움도 하였다. 또한, 부당한 법에 복종하는 것을 남자답지 못한 행동으로 여기며 폭력보다 비겁함을 더 혐오하는 사람이다. 간디의 비폭력 투쟁 중 소금 행진이 소개된다. 간디의 추종자들은 영국에 투쟁하기 위해 시위를 하였고 무장 경찰들이 버티는 곳까지 걸어 들어가며 행진을 멈추지 않았다. 경찰이 멈춰 세우고 때려도 그들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네겐 노력할 권리가 있지만, 반드시 그 노력의 결실을 취할 권리는 없다.
절대로 보상받기 위해 행동에 나서지 말 것이며,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바라서도 안 된다.

 

간디가 비폭력 투쟁을 진행하면서 가졌던 마인드라고 한다. 물론 내가 투쟁을 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무언가를 얻어내고자 하는 부분은 투쟁가들과 똑같은 입장이다. 항상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노력을 했고, 좋은 결과를 받기 위해 노력을 해왔다. 그로 인해 좋은 결과를 받았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었다. 아닐 때 좌절한 적이 상당히 많았는데 간디의 말을 듣고 좌절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노력한 일에 대해 결실을 취할 권리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력을 하지 않는 것도 안된다. 그냥 내가 있는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게 제일 현명한 것 같다. 

 

3부 : 황혼


3부에는 총 4명의 철학자들이 나온다. 니체, 에픽테토스, 보부아르, 몽테뉴 니체를 제외하고는 다들 처음 들어보는 철학자들이다. 하지만 작가가 하고 싶은 말들이 여기 다 있다고 할 정도로 강조하는 부분과 중요한 말들이 많이 나온 챕터다. 

성공의 모습은 자기 운명을 철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니체는 철저한 운명론자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좋은 일이면 행복해하고, 좋지 않은 일이면 이 또한 자신의 운명이라 생각하며 덤덤히 받아들인다. 즉 후회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군대에 있을 때도 후회와 관련하여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후회는 정말 쓸모없는 행동이다. 결과는 벌어졌다. 되돌릴 수 없다. 그 상황에서 후회를 하면 무엇이 나아지는가? 결과에 지내는 시간만 길어질 뿐이다. 니체의 말처럼 철저하게 운명을 받아들이고 덤덤하게 다음 일을 진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운명론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상태였지만 니체의 마인드로 살 수만 있다면 운명론에서 더 나아간 예정론을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니체는 또한 영원회귀라는 단어를 언급하며 인생을 살아갈 때 검사를 할 수 있는 척도를 제공한다. 영원회귀.. 사실 나는 기독교다. 교회를 다니면서 지옥에 관한 내용을 들으며 죽음과 관련된 내용을 어릴 적부터 들어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릴 적부터 죽음에 관해 생각할 수 있었고, 5살 때 교회에서 설교를 듣다가 영원히 지옥에 갇히게 된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결론은 무서웠다. 그냥 공포 그 자체였다. 5살이라는 나이에 인생의 끝인 죽음을 생각해보았고, 그 뒤엔 어떻게 될지 교회에서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영원히 지옥에서 사는 삶을 생각해보니 너무 무서웠다. 하루는 너무 무서운 나머지 부모님의 침대로 달려가 펑펑 운 적도 있다. 어릴 적부터 그런 내용을 접하고 생각하다 보니 커가면서 점점 무덤덤해졌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영원회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사실 이제 죽어서 영원 회귀할 생각은 별로 무섭지 않다. 모두가 그런 것일 테고 아직 겪어보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니체가 말한 것처럼 현실의 삶이 영원회귀라면 어떨까? 인생에서 하지 말아야 할 실수를 한 날이 죽을 때까지 반복된다면 그 삶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 여기서 니체가 말하는 것은 영원회귀가 있다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자신의 삶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 영원회귀다. 인생은 되돌이킬 수 없다. 후회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다. 그저 한 번의 선택을 신중하게 잘해야 한다. 나의 선택으로 일이 잘못되고 나쁜 일이 생긴다면 돌이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영원히 그 결과가 반복될 수도 있다. 니체는 이를 자신의 삶의 근본으로 삼고 일을 선택하는 데에 있어 누구보다 신중히 해야 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순간순간을 충실히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니체의 철학을 읽으면서 나의 군생활 동안의 생각이 여기 모여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추구하는 철학과 가장 비슷한 사람이다. 많은 것을 배웠으며 공감했다. 기회가 된다면 니체와 관련된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니체의 감명이 떠나기도 전에 에픽테토스의 감명이 찾아왔다. 

해야 할 일을 하라. 그리고 일어날 일을 일어나게 두라
운명을 그저 받아들이지 마라. 운명을 사랑하라, 운명을 욕망하라.
무언가를 잃어버렸을 때, 즉시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가질 수 있었던 시간에 감사하라.

 

위의 3 문장은 에픽테토스가 남긴 말들이다.  소크라테스와 간디 그리고 니체처럼 해야 할 일에는 충실하고 뒷일은 운명에 맡기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위의 철학자들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에피쿠로스와는 비슷한 면일 수도 있는데 매사에 감사하고 즐거워하라라는 점이다. 마지막 문장에서 알 수 있다. 소중한 물건을 잃어버렸는데 그 자리에서 감사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났는데 그 운명을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사람들은 신이나 운명을 원망할 것이다. 하지만 에픽테토스, 스토어 학파는 매사에 감사하며 살라 말하고 있다. 또한, 역경이 생기면 '넌 내게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마인드로 역경을 이겨내라 하고 있다. 삶에 있어서 이 부분들을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모두가 안다. 하지만, 니체의 영원회귀와 접목하여 주어진 삶을 충실히 살기 위해선 스토어 학파의 태도가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내 삶은 현실이 될 아름다운 이야기, 내가 살아가면서 스스로 만들어 낼 이야기가 될 것이다.
나는 내 운명에 만족하며 내 운명이 어떤 식으로든 변하길 원치 않는다.

 

노화에 관한 고찰로 유명한 보부아르라는 철학자가 남긴 말이다. 이 철학자 역시 운명에 만족하며 살라고 하고 있다. 보부아르에 관한 내용으로 작가가 늙어가는 것에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많은 부분을 반복하여 적었고, 자신의 생각을 많이 적었다. 지금은 별로 공감이 되지 않았지만 언젠간 겪게 될 미래의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구절이 많았다. 40~50년 뒤의 내가 꼭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죽음에서 낯선 느낌을 제거하고, 죽음에 익숙해지자. 다른 무엇도 죽을 만큼 자주 생각하지 말자.
죽음의 해결책은 더 긴 삶이 아니다. 죽음과 절망은 같은 약을 필요로 한다. 수용이다.

 

마지막으로 죽음의 관한 고찰을 하는 철학자 몽테뉴가 나온다. 사실 모든 사람들은 살면서 한 번씩은 철학적인 생각을 한다. '나는 죽으면 어떻게 될까'. 나는 이 생각을 위에서 언급했지만 5살 때 생각했다. 그때는 너무 무서웠다. 사실 아직까지도 밤에 혼자 저런 생각을 하면 무섭긴 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인가부터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몽테뉴는 죽음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고민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고민하는 지금이 더 고통스러울 뿐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지금 까지 인간의 역사 속에 죽음을 이긴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모두가 공통적으로 받아들이는 운명이다. 책에는 죽음보다 불멸이 더 고통스러운 것이라며 아무렇지 않게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해주고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여기에 내 생각을 덧붙이자면 살아가는데 쓸 시간도 아까운 마당에 죽음을 생각할 시간은 더 아깝다고 생각한다. 

 

4부 : 부활


책은 위 내용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4부는 내가 임의로 정한 챕터다. 니체의 영원회귀를 사용해서 말이다. 4부가 끝나면 다시 1부로 돌아간다. 결국엔 같은 순간을 반복할 것이다. 하지만 이를 절망적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즐거워해야 한다. 루소의 걸음과 소로의 눈, 쇼펜하우어의 귀와 소크라테스의 물음표, 에피쿠로스의 마인드, 간디의 용감함 그리고 니체의 수용. 이를 인생에서 새기며 영원회귀가 되더라도 즐겁게 맞이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순간순간을 후회 없이.